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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어느 날 그들은 그 수염과 눈을 바꾸기로 했다. 먼저 굼벵이가 제 눈을 빼서 가재에게 주었다. 가재가 굼벵이의 밝은 눈을 받아 달고 보니, 세상은 더 없이 환하고, 저의 수염은 더욱더 위엄 있게 보였다. 그래서 가재는 저의 그 위엄 있는 수염을 굼벵이에게 줄 생각이 없어졌다. 굼벵이는 가재가 그 수염을 선뜻 내주지 않자, “왜 이렇게 꾸물대는가?”하고 다그쳤다. 그러자 가재는 “눈도 없는 놈이 수염은 달아서 무얼 해?”하고는 그냥 가 버렸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본 개미는 굼벵이의 하는 짓과 그 당하는 꼴이 너무도 우스워서, 그만 웃고웃고 하다가 허리가 잘룩해졌다.
그러나 가재는 그렇지 않다. 옆걸음을 쳐도 개미보다는 빠르고, 이제는 밝은 눈까지 달았으니 숨을 수도 없다. 잘못 보였다가는 언제 그 예리한 집게발에 허리가 잘릴지 모른다. 개미는 이런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굼벵이의 무지와 경박을 비웃으려는 게 아니었다. 가재의 배신과 모순을 질타(叱咤)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소 그런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개미의 간악한 편파성을 꾸짖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개미는 가재의 잘못을 질타했어야 한다. 보복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면, 굼벵이의 어리석음도 비웃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는 더 꾸짖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아니, 앞에서 몇 마디 꾸짖은 것도 오히려 취소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 개미란 놈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다. “이봐요, 정 선생. 내가 당신에게 보복할 만한 힘이 없다고 해서, 이렇게 나를 매도하는 거요? 호랑이가 나처럼 했어도 이럴 거요?”
내 발이 저리니 어떻게 더 개미를 꾸짖겠는가?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옛말이 있다. 내가 개미를 꾸짖은 말이 나를 꾸짖는 말로 돌아오다니, 참으로 말의 어려움을 알겠다. 그럼 어찌할까? 호랑이를 꾸짖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까지는 꾸짖는 일을 삼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