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는 곳에 또하나의 내 공간이 생긴다는것이
오늘은 참 아늑하게 느껴진다.
소풍방이라는 홈피를 가지고 있지만
마치 이곳은
그토록 내가 갖고싶어하던 다락방과 같은 느낌을 준다.
다락방....
그래, 이곳을 내 다락방이라 부르자.
-다락방을 선물해준 성빈씨께 감사...^.*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그마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게 되고
조그마한 것에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나이들면 눈물도 없어진다는데 어째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였나...
어제는 속울음을 토해내며 울었다.
잠시...
모든것을 놓아버리고
마치 탈진한듯이 꺼억꺼억~~~~

울다가 받은 전화....남편이다.
늦은오후가 될 때까지 밥을 한끼도 먹지 않았다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때 먹은 생식을 제외하곤...

그는 집에 맛있는 반찬이 있냐고 묻는다.
맛있는 반찬.....나는 열무김치를 담았는데...아직 익지 않아서 맛은 없을거라고 대답한다.

그가 벌인 일로 인해서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절망에 괴로워 했지만
그의 전화는 아무일없다는 듯이 받는다.
말해서 무슨소용이 있을까...싶으니 아무말을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 나는 아마도 그의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를 따뜻하게, 묵묵하게 지켜주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충분히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을테니..

밥을 먹으러 온다는 그를 위해 과외를 하러 가기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나는
식탁을 차려놓고 집을 나선다.
그가 좋아하는 그리 맵지않은 몇개의 고추를 된장과 함께 상포 밑에 밀어넣으면서....

잠에서 깨어나 동굴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붉은 비단천 위의 새하얀 학 한마리....
어제 틈틈히 수를 놓았었다.
수를 놓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빈 도안을 채워가는만큼 생명도 함께 채워 가는 것 같다.

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님께 다녀왔다.
힘들다는 이유로 아버님을 한동안 찾아뵙지 못했더니
아이들이 가면 주시곤 하던 모아놓은 동전이 참 많다.
많이 반가우셨던지 아이들에게 만원짜리 지폐도 각각 한장씩 얹어주신다.

많이 부어계신다.
아직도 그 약을 끊지못하고 계시다는 증거이다.
돼지의 입맛을 좋게해서 잔뜩 살을 찌워 무게를 많이 나가게 하기 위해 먹이는 약.
뼈를 삭게 만드는 등 심한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는 약인데
아버님은 그 약을 십년 넘게 아주 오랫동안 복용하고 계신다.
몸에 해를 가져오는 약의 복용과 비관적인 생각을 마음에 담고 계시니
저렇게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시는 건 어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두운 이야기들은 이제 피하게 된다.
아버님도 예전처럼 집안의 아프신 분들에 대한 것이라든지 남편의 일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
더이상 묻지 않으신다.
이야기 도중 딴 생각을 한다.
느껴지는 아버님의 외로움에 그동안 힘들다며 아버님께 소홀히 한 내 자신이 밉다.
또 다짐을 한다.
예전처럼 자주 찾아뵈어야지...
내가 좀 넉넉한 사람이라면 참 좋을텐데....

빗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내내.....비가 오면 참 좋을텐데....
동굴창가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수를 놓으면 그 고요함에 나는 너무 행복해지니까....

할아버지와 어머니 방의 불을 끄고

CD꽂이에서 듣고싶은 음반을 골라낸다.

계획을 세우고 수를 놓다보니 하루의 문을 여는 새벽과 마주친다.

잠에서 깨어난 진영이가 아래층에 다녀오더니 냉커피를 만들어 가져다 준다.

♥. 2003,8,18,월요일.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싶다. 아니, 동굴에서 한발자욱도 나가기가 싫어진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고, -심지어 아이들에게조차도- 동굴에만 있고싶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빗소리만을 듣고싶으면 CD플레이어의 전원을 끄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비의 품에 푸욱~ 안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수를 놓기도 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고 동굴바닥에 누워 눈을 감기도 하고....
그런데, 곧 어르신들 점심을 차려드려야하고, 과외도 가야하니.....

조선대에 시간강사들의 노조가 결성이 되었다. 모임에 나오라는 연락을 방학이 시작되는 무렵부터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았었다. 무슨이유로 결성이 되었는지 관심도 없었지만....알고보니 이번학기부터 5년이상 강의를 한 시간강사들을 학교에서 정리를 한 모양이다. 학교입장에서는 다른사람에게도 강의를 할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4년째에 들어서니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라 곧 내 문제이기도 한데
노조에 참여해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돈을 벌어야겠다고, 돈이라는 것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는 것은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겠기에....늘, 아이들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도움을 주는것이지 그 다음부터는 대학을 들어가든 그렇지않든 스스로 책임지는 자립을 해야한다라고 말을 한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이렇게 돈이라는 것에 끌려다니지는 않을텐데... 그럴필요가 전혀 없을텐데...점점 옷에 대한 욕심이라든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니까...

학교측에서는 내년부터 강의를 잘 하거나 기타 다른 조건에 맞는 강사들에게 외래교수라는 자리를 마련해 일정한 급여를 주는등 겸임교수와 같은 해결책을 마련할 예정이라한다. 그때가봐야 알겠지만 만약 그 제도가 생긴다면 지금보다 조금 안정이되는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못한다 할 지라도 실망할 일은 없다. 신체 건강하니 무슨 일인들 못할까.....

돈걱정 없이 어르신들 모시고,아이들 바르게 키워내고,수를 많이 많이 놓으면서,읽고싶은 책도 원없이 읽으면서 살고싶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듯 한데....^^ 책을 쪼금쪼금 읽으니 머릿속이 텅텅 비는 듯하다. 이러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면 어떡하지.....?

소풍방에서는 내보일 수 없는 나를 보일 수 있어서 나는 다락방이 동굴처럼이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