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촛불집회 | UserPreferences |
제목 | 도움말 | 찾기 | 대문 | 바뀐글 |
노래패와 가수들이 나오고, 연사들이 나와 연설을 했지만, 80년대 정치집회의 격앙되고 경직된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달랐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시민의 의식이 이만큼 성숙했구나, 하는 점이 피부로 느껴졌다. 시간이 무심히 흘러간 것 같지만, 그 사이에 진화라고 할 만한 것이 일어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87년 6월에도 나는 비슷한 공간에 서 있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 회현 고가 위에서 대학생들이 돌을 집어 던지고, 최루탄 맞은 시민들이 분수대에서 세수를 했다. 서소문 중앙일보 건물 옆, 어떻게 하다보니 군중에서 떨어져나온 우리들 이삼십 명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와 사과탄을 던지던 전경의 이 악문 표정이 생각난다. 빌딩 사무실에서 종잇장을 집어 던지며 구호를 외치던 와이셔츠 차림의 아저씨들. 보라색 머플러들 두르셨던가, 김민석 어머니, 김세진 어머니 들. 그 덥던 날. 사과탄, 지랄탄, 페퍼포그가 안개처럼 뿌옇던 날.
87년의 경험은 소중하지만, 아직 결여하고 있었던 그 무엇이 올 봄에 채워지는 듯하다. 우리는 계속 민주를 이야기했지만, 정말로 시민이 주인이라는 명제를 스스로 깊이 긍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물을 찾고, 지도자를 찾고, 전위(뱅가드)니 수령이니 하면서 누군가 이끌어갈 사람을 찾았다. 날잡아 기껏 투표하면, 모셔야 할 높으신분을 뽑을 뿐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상(또는 허상)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12일에 식당에서 점심 먹다가 탄핵 결의 생중계를 보면서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한편으론 '저것들 자멸하는군' 하는 판단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라디오로 들은 뉴스 현장음: "(울먹이는 아니 거의 울부짖는 시민) 어떻게 뽑은 대통령인데~ 어떻게 뽑은 대통령인데..." 울컥, 속에서 올라왔다. 하지만 역시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까? 진정 이 나라는 천운이 함께 하는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 쓰레기들이 자진해서 쓰레기장으로 가 버리는 일이 생겨났을까? 기독교인 식으로라면 할렐루야! 할 일.
욕심이 눈을 가림이 이와 같다.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어떻게 저런 판단을? 亢龍有悔가 다이나믹하게 펼쳐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있다.